법률서비스와 변호사의 증원
법률서비스와 변호사의 증원
  • 기사출고 2005.05.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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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규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1년에 전국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학생 수는 약 3500명이라고 한다.

어느 동네나 병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병의원의 숫자는 많지만,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문가는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의사만이 가능하고 의사 외에 다른 사람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된다.

◇노강규 변호사
즉, 병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문직은 의사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수명의 연장에 따라 노년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한 의료수요는 그에 상응하여 계속 증가한다.

그러면 법조계로 눈을 돌려보자.

국민들이 조력을 구하는 법조수요는 우리의 현실에서 의료수요와 단순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아마도 한 개인이 1년 동안 소송을 직접 수행하거나 소송을 위임하는 일은 주위를 보아도 극히 드물지만 개인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배출하는 1년 변호사 수 1000명도 부족하다고 해서 로스쿨을 도입하여야 하고, 그 정원은 최소한 3000명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시민단체나 일부 대학교수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법조 및 법과대학 현황" 자료에 의하면, 2002년도 기준으로 우리의 법조인 수는 판사, 검사, 변호사를 합하여 8238명으로 1인당 국민수는 5783명이며,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10배 이상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일본의 5247명과도 비슷하다.

여기에 사실상 법률사무를 처리하는 유사법조직역인 법무사 5000여명, 관세사 3000여명, 변리사 1200여명을 더하면 우리의 법조인 1인당 국민수는 2500여명으로 사법제도 시행 200년이 넘는 프랑스의 1509명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변호사를 대폭증원하면 국민들은 누구나 값싸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보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변호사 97만여명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소송비용이 저렴하기는 커녕 재판 한번에 빈털터리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OJ 심슨이나 변호사인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도 변호사에게 지불한 천문학적 소송비용으로 거의 파산상태까지 이르렀다.

미국에서 제공된다는 값싼 법률서비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공인중개사, 행정사, 법무사가 수행하는 업무에 관한 수수료 정도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공인중개사, 행정사,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등 변호사 외 법조 유사직역을 망라해 변호사라는 통일된 명칭의 법률가(lawyer)가 그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식 값싼 법률서비스는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이후 몇십년 동안 법무사, 행정사, 세무사, 공인중개사를 통하여 이미 수행되어 왔던 내용들인데도 어떤 시민단체나 교수들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점에 관한 지적을 하지 않는다.

변호사 수의 폭증이 값싸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단순히 공산품의 수요와 공급 정도로 생각하여 여러 업체에게 공산품을 많이 생산해 내서 경쟁을 시키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잘못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값싸고 질좋은 사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하에 진행되어온 로스쿨의 도입과 변호사의 폭증은 이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져가는 듯하다.

로스쿨과 변호사의 대폭 증원의 장점에 대하여는 신문지상이나 언론에서 수없이 보도되었지만,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직역이기주의 또는 밥그릇 챙기기'(로스쿨이라는 용어가 갖는 마력만큼이나, 법조인을 공격할 때 일부 대학교수들과 단체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정도로 매도되고 법조단체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결국 국민들은 일시적으로는 대량 양산된 법조인으로 인하여 값싼 법률비용을 지급할지 모르나, 로스쿨 도입과 변호사 수의 폭증은 결국 개인변호사 상당수의 폐업과 전업을 가져올 것이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장논리에 따라 악덕변호사의 폐해 또한 경험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적자생존한 외국계 로펌과 대형 로펌을 이용하여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특히, 일본의 로스쿨 제도의 실패에서 조차도 아무런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급하게 도입되는 사법개혁의 후유증에 대하여 훗날 책임을 지는 단체나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고, 결국은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제라도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공격하기 보다는 정말로 경쟁력 있고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더 늦어지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그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노강규 변호사(광주지방변호사회 · ggno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