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실무 경험과 경영의 만남
법률 실무 경험과 경영의 만남
  • 기사출고 2005.03.03 14: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문

유선으로 처음 원고 작성을 의뢰 받았을 때에 필자는 아직 사내 변호사로 활동한지

1년도 채 되지 아니하여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편, 사내 변호사로

완전히 정착하기 전 현재의 경험과 느낌들이 세월이 흐른 후의 그것과 다를 수 있으

므로 나름대로 다른 분들께 도움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쓴다.

입사

헤드헌터

필자는 이른바 헤드헌터(HR 컨설팅사)를 통하여 입사하였는데, 헤드헌터에 관하여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그 역할이 자못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특히 체계적인 컨설팅사일수록, 지원자보다 의뢰 회사와의 신뢰 관계에 더 가치를 두고 객관적인 의견 및 취합된 정보를 회사에 전달하므로, 컨설팅사의 역할과 의견은 회사의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따라서 회사와의 면접 못지 않게 헤드헌터와의 면접도 중요할 수 있다.

면접

◇이남권 변호사
면접 때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왜 사내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필자에 앞서 면접 본 분들 중 일을 좀 적게 하려고 지원하였다는 소박한 답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일이 많았으면…’하면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진심이건 아니건, 오히려 진심인 경우에는 더욱더, 이러한 답변이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위 질문에 대한 필자의 소견으로는, 사내 변호사 및 그 역할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이를 정리하여 면접에서 대답하고, 점진적으로 경영자의 마인드를 아울러 견습하겠다는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사 최고 경영자가 필자와 면접시, 현재까지 한국의 CEO는 주로 경영학이나 공학을 전공하였으나 앞으로는 변호사들도 이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소양과 법률 지식을 함께 닦도록 노력하라고 한 점에 비추어, 회사 또한 장기적으로는 사내 변호사에 대하여 법률 외적인 기대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내 변호사로서의 활동

기본 업무

필자의 경우, 계약서 작성 및 수정, 법률 검토 등 이른바 서류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사내 변호사도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변호사 본연의 업무와 유리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동료들의 서류 작업 요청 시의 절차이다. 계약 체결 전날에서야 형식적으로 서류를 전달하고 사안의 배경에 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무슨 문제가 없는지 한번 봐 달라는 식으로 요청하는 실무자가 있는 반면, 특정 프로젝트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자료를 제공하면서 한 달 뒤 어떠한 계약서가 필요할 것 같으니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필자가 아무리 바쁜 경우에도 이를 맞추어 주지 못한다면 필자의 무능과 게으름의 소치일 것이다.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당해 서류를 제대로 검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료들과 사이에 책임 운운하는 구차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업무요청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근본적으로 필자가 아직 일부 동료들에 대하여 사내 변호사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시키지 못한 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내 변호사의 역할은 단순히 요청된 법률 검토 등의 업무에 그치지 않고, 어떤 일에 사내 변호사의 참여가 필수적인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 부서 동료들로 하여금 미리 사내 변호사에게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업무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그 절차 등을 확립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사내 변호사의 역할 중 또하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기안자들은 대체로 법률적 검토 결과가 긍정적이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잘 알게 되고, 나아가 그 동료의 당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는 점이 인식되면, 당해 프로젝트에 법률적 장애가 있어 곤란하다고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좋은 발상이다”라는 발언은 사내 변호사의 몫이 아닐 것이며, 그럴수록 더 보수적으로 검토하되 대안 제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만, 문제점만

지적하고 대안을 함께 모색하지 않는 것은 때로 지적하지 않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회의

회의에서는, 혼자 시간을 두고 할 수 있는 서류 작업과 달리 신속, 정확한 쟁점파악이 요구되는데, 변호사들 간의 회의와 달리 사내 변호사가 관련 법령에 관하여 혼동이나 불명확이 있을 경우 당해 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시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미리 회의의 주제 및 관련 법령을 검색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아웃소싱(outsourcing)의 메신저

사내 변호사가 회사의 모든 법률 수요를 혼자 처리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안에 따라 능력이나 시간의 부족, 중요성 등으로 인하여 외부 법률사무소에 의뢰하게 된다. 당사는, 외부 법률사무소에 대한 모든 의뢰를 필자를 거치도록 사내에 지시하였는데, 이러한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사안 진행의 효율성, 법률적 쟁점 등에 대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 비용 등의 측면에서 회사에 이로울 수 있다. 따라서, 관련 부서와의 내부 회의 등을 통하여 먼저 사건을 파악하여 직접 처리할 사건과 외부 법률사무소 등에 의뢰할 사건을 구분하고, 외부 의뢰 시에는 그 질문 내용을 법률적으로 정리하여 질의하고 외부 법률사무소의 답변을 해석함에 있어서 정확성을 높이는 것도 사내 변호사의 중요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업무 외 관계

필자는 90년대 초경 은행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다른 변호사보다는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동안의 변호사 생활로 인해서인지 ‘내가 변호사인데…’ 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하였고, 한편, 회사동료들 중에도 ‘변호사들은 이렇더라…’하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어, 상호간의 ‘편견과 오만’에서 해탈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사내 변호사 또한 직장인이고 모든 직장인은 회사 조직 내에서 각자의 개성과 기업 문화에 따라 각각의 인간 관계를 설정한다고 믿고,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사내 변호사의 준비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아주 오래 전에 앞부분밖에 읽지 못했음을 자백한다)에서, 현대의 시장 지향적 문화 풍토에서는 사랑의 감정도 시장에서 자신과 상대방의 가치를 고려하여 적당한 대상을 찾았을 때에 발휘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있어서의 이런 경향을 비판하는 취지에서 서술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회사의 리크루트는 실로 이러한 지적이 정확히 적용되는 분야일 것이다. 인력시장에서는 상품으로 준비된 사람만이 팔릴 것이다. 아래는 사내 변호사라는 상품의 필요 항목을 짧은 경험으로 간추려 본 것으로서, 이를 정리하며 이 글을 마친다.

법률 지식과 성실성

법률 지식은 변호사의 기본이며 사내 변호사는 특히 상법 회사 편과 계약서에 관한 지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어떤 변호사도 모든 법률 분야에 능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회사도 종합 법률회사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 변호사를 채용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모든 법률 분야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불필요할 것이다. 다만, 어떤 사안에서도 성실하게 조사 연구하고, 외부 법률사무소에 의뢰하는 경우에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는 변호사뿐만 아니라 어떤 직역의 직장인으로서도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재무 회계

필자는 은행 근무 경험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재무 회계 지식이 결여되어 있어, 이에 관련된 회의에서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곤란을 겪고 있다. 사내 변호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입사 전에 먼저 이를 공부해 두면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필자의 당사에서의 짧은 경험에 의하면, 회사는 재무 회계를 근간으로 경영되고 분석된다고 보인다.

어학

사내 변호사로 입사할 때에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 능력이 필수 조건일 수도 있다.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변호사의 발언 내용은 법률에 관련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일반적인 영어뿐만 아니라 법률 영어도 필요하다. 필자의 어설픈 법률 영어에 회의 참석자, 특히 외국인들이 별로 어렵지도 않은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장시간 설명하였거나 다른 한국 분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적이 있다. 한편, 제2외국어, 특히 중국어의 필요성도 근래에 한층 강조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중국어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플러스 요인은 되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였으면 한다. 중국어 등 어느 제2외국어의 초보자라면 굳이 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보다 먼저 재무 회계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를 사장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남권 변호사(한글라스 그룹 법무이사, nklee@hanglas.co.kr)

◇변협과 필자의 동의 아래 대한변협신문에 실린 글을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