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과 제일모직 판결
이건희 회장과 제일모직 판결
  • 기사출고 2012.08.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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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선 얘기를 해야 겠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제일모직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 말이다. 대구고법은 1996년 발행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제일모직이 인수하지 않고 실권해 회사에 13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이 회장에게 130억원을 제일모직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진원 기자
제일모직의 당시 경영진 중 한 사람이었던 이 회장의 배임행위를 인정한 것인데, 판결문을 읽어 보면 사안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제일모직 등의 에버랜드 CB 인수 포기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에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시키기 위한 그룹 차원의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이며, CB 인수 포기가 이 회장과 이 회장의 지시를 받은 그룹 비서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게 판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또 판결이 확정되면 판결 내용에 따라 제일모직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면 될 일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다. 실제로 130억원은 이 회장에게 큰 돈이 아닐 것이다. 이 회장의 자녀들은 또 1054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에버랜드 주식을 97억원의 적은 비용으로 취득, 957억원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 CB 인수 포기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물더라도 산술적으로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이나 이 회장은 이런 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선 안 된다. 변호사에게 맡겨 재판에서 다투어 보고, 지면 배상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끝낼 게 아니라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상세하게 판시한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보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대구고법 재판부는 CB 발행 및 인수 포기가 당초부터 CB의 저가발행을 통해 증여세 등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이재용 사장 등에게 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회장과 비서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윤리경영, 준법경영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엔 변호사만 수백명 근무하고 있으며, 윤리경영, 준법경영을 선언하고 선언문을 회사 홈페이지에 상시 게재하고 있다. 그러나 에버랜드 CB 인수 포기는 비록 과거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윤리경영, 준법경영과는 전혀 거리가 먼 구시대적인 꼼수로밖에 안 보인다.

이 회장은 지금이라도 판결문에 적시된 내용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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