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에버랜드 CB 고의 실권은 이건희 회장 지시 따른 결과"
[손배] "에버랜드 CB 고의 실권은 이건희 회장 지시 따른 결과"
  • 기사출고 2012.08.2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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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법] "이 회장, 제일모직에 130억 배상하라""증여세 회피하며, 이재용에 지배권 넘기려 포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제일모직에 13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1996년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를 목적으로 발행한 전환사채(CB) 인수를 제일모직이 고의로 실권한 데 따른 책임을 법원이 인정한 결과다.

법원은 특히 에버랜드의 CB 발행 및 제일모직 등의 고의 실권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시키기 위한 그룹 차원의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대구고법 민사3부(재판장 홍승면 부장판사)는 8월 22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의 소액주주 3명의 이름으로 에버랜드 CB 고의 실권으로 제일모직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이건희 회장 등 제일모직 경영진 15명을 상대로 낸 주주대표소송의 항소심(2011나2372)에서 "이 회장은 130억 4900여만원을 제일모직에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또 제일모직의 제진훈 전 대표이사는 13억 9500여만원, 유현식 전 이사는 13억 400여만원을 이 회장과 연대하여 제일모직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측은 김영희 변호사가, 피고 측은 법무법인 율촌과 이광범 변호사가 대리했다.

주당 최소 22만 3659원 가치

재판부는 먼저 에버랜드가 CB를 발행할 1996년 당시 에버랜드의 적정 주식가치가 적어도 주당 22만 3659원이 된다고 밝혔다. 에버랜드가 기업비밀임을 이유로 에버랜드의 실제 자산가치 공개를 거부해 대차대조표에 드러난 자산, 즉 장부가치인 1581억원을 기준으로 산정한 결과다.

에버랜드가 에버랜드의 주당 가치인 22만 3659원의 4%에도 못미치는 주당 7700원에 CB를 발행했음에도 이를 인수하지 않고 포기한 것은 임원들의 배임행위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

이 회장 등 피고들은 에버랜드 CB의 이자율이 낮아 사채로서의 투자가치가 없고, 과거 한 번도 배당을 한 적이 없어서 인수를 포기한 것이며, 이는 경영판단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자산의 가치를 보전하는 것도 임원들의 임무"라고 지적하고, "제일모직이 CB를 인수하지 않아 발생한 주식가치의 희석화로 139억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재용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은 1054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에버랜드 주식을 97억원의 적은 비용으로 취득하여 이 건으로만 957억원 이상의 이익을 보았다"고 지적하고, "14억원의 인수대금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139억원의 손실을 가한 것을 두고 합리적 경영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특히 이 회장의 책임과 관련, "제일모직의 실권은 이 회장 또는 이 회장의 지시를 받은 비서실의 지시 또는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에버랜드 설립 이후 한 차례도 발행하지 않았던 CB를, 그것도 기존주식의 1.8배에 달하는 많은 양으로 발행하고, 제일제당을 제외한 모든 주주가 실권을 하면서 이재용 등 이 회장의 자녀들이 인수하였고, 이에 따라 종전에 주식이 전혀 없던 이재용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기존 주식의 1.8배 발행

재판부는 또 "이재용이 1993년경부터 이 회장으로부터 현금 증여를 받아 삼성계열사의 비상장 주식을 취득하고, 상장 후 고가에 처분하여 재원을 마련한 다음 그 자금으로 삼성 계열사의 CB나 주식을 인수함으로써 최대주주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며, "이것을 이재용 개인 또는 이재용의 재산을 관리하던 비서실의 순수한 투자판단에 따른 우연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에버랜드의 주주 중 비우호적 관계에 있는 제일제당을 제외하고는 8개 법인주주와 17인의 개인주주가 에버랜드 CB 인수에 전원 실권했다. 재판부는 "각 주주의 개별적인 자금사정이나 경영상태, 에버랜드에 대한 가치평가가 모두 다를 것임에도 모든 주주가 가치평가의 절차 없이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발행된 에버랜드 CB의 인수를 포기한 것 역시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도 상세하게 언급했다. CB인수와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주식 취득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등→에버랜드로 요약되는 복잡한 형태의 순환형 출자구조에 에버랜드가 편입되었고, 이재용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었는데, 이러한 지배구조의 변경이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의 지시나 관여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순환형 출자구조 완성

또 "삼성그룹이 순환형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이 비교적 낮은 점을 감안하면, 지배구조에 변경을 가져올 수 있는 주식, CB, 신주인수권의 발행, 인수 또는 포기에 관한 권한이 각 계열사에 그대로 맡겨져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당시 고액재산가의 부(富)의 이전에 대한 과세강화를 위한 상속세법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한참 진행되던 시점이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시점에 갑작스럽게 에버랜드 CB가 발행된 것 역시 이 CB가 조세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된 것임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 "에버랜드 CB 발행이 당초부터 CB의 저가발행을 통하여 증여세 등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이재용 등에게 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회장과 그 지시를 받은 비서실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피고 제진훈, 유현식이 제일모직에 배정된 전환사채의 인수를 포기한 것 역시 이 회장과 비서실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지시나 요청에 호응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하고, "피고들의 행위는 모두 제일모직에 대한 업무상배임 행위로서 이사로서의 임무를 위배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은 감액할 사정이 없다"며 손해배상액을 감액하지 않았다. 다만 실손해는 139억원이나 1심에서 130억원의 배상을 명해 불이익변경의 원칙상 1심대로 1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제진훈, 유현식씨는 "개인적으로 취득한 이익이 없으므로 관련 사정을 참작한다"며, 손해액의 10%로 배상액을 감경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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